동래ㆍ구포 만세거리
부산의 3ㆍ1 운동은 개항 이후 일본인의 이주와 조선인 공동체의 파괴, 일본인의 경제력 장악과 조선인 상권의 쇠퇴 등 조선인의 '동래'가 일본인의 '부산'으로 변신하는 과정에 대한 조선인의 대응이었다. 1919년에 전국적으로 일어난 3ㆍ1운동은 일제시대 민족해방운동을 상징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식민 지배를 받았던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찾기 어려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가장 광범위한 지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하여 3개월동안 진행된 3ㆍ1운동은 비록 민족해방을 바로 쟁취하지는 못했지만 세 가지의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첫째, 일제의 통치방식을 변화시켰다. 수원 제암리 학살사건과 같이 야만적인 폭력을 동원하면서 급한 불을 끈 일제는 3ㆍ1운동의 재발을 막기 위해 무단통치를 문화통치로 변경했다.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