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아미타여래좌상: 신비로운 역사를 지닌 불상
금은아미타여래좌상(金銀阿彌陀如來坐像)은 높이 15cm로, 불상과 대좌, 그리고 광배가 따로 주조되어 하나로 결합된 작품이다. 여래상은 순금으로, 대좌와 광배는 은에 금을 입혀 제작되었다. 이 불상은 통일 신라 말이나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연화 대좌 위에 석가여래가 중품상생인(中品上生印)을 짓고 앉아 있다. 뒤에는 불이 타오르는 형상의 광배가 붙어 있고, 대좌는 평면 6 각형의 3층 기단과 앙련(仰蓮)의 대로 이루어져 있다.
정교한 제작 기법
대좌에 금을 입힌 방법은 때려 누르는 수법으로 제작되었으며, 이는 현대의 세금 기술로도 재현하기 어려운 고도의 기술이다. 잘못하면 은판이 찢어지거나 두께가 일정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투각으로 표현된 광배의 화염문은 신라의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필자 역시 이 불상을 관리하면서 순은의 광배꽂이가광 배꽂이가 부식된 채 떨어져 나가 대좌에 헐렁하게 꽂혀 있음을 확인하였다. 세밀하고도 화려한 조각에 비추어 보아 광 배꽂이가 처음부터 헐렁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우며, 순은이 부식되려면 오랜 세월이 걸리니 전문가의 조사와 감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불상은 1967년 법정에서 가짜로 판결받아 세상에서 잊혔다.
불상의 발견과 거래
1966년 어느 봄날, 경주에 사는 김준철은 회현동에 사는 김동현의 집을 찾아와 불상을 보여주었다. 순금으로 만든 불상과 은으로 만든 좌대와 광배는 너무나 귀하고, 조각 수법도 대번 신라 시대로 넘어가고 있었다. 불상을 잡은 김동현의 손이 가지런히 떨렸다. 김동현은 불상의 가치에 감탄했으나, 도굴품이라는 사실과 그로 인한 위험 때문에 망설였다. 결국 김동현은 가깝게 지내던 정권장에게 불상을 보여주었고, 정권장은 불상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가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정권장이 입을 열었다.
“250만 원 내겠소.”
대단한 거금으로 기와집 5채 값이었다. 그러나 김준철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실망의 빛이 가득했다.
“이 물건은 저 혼자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는 못 팔겠습니다.”
그는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상위에 놓여 있던 불상을 다시 보자기에 주섬주섬 쌌다.
불상의 추후 거래와 사건
며칠 후, 김동현의 집에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여보시오, 나 이병각이요. 빨리 우리 집으로 와 줘야겠어.”
명령조의 전화를 받고 김동현은 급히 그의 집으로 달려갔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안면이 있던 종로 고옥당(古屋堂)의 주인 김정웅이 눈으로 인사를 해 왔다. 앗! 김동현은 가슴이 철렁하고 놀랐다. 며칠 전, 김준철이 자기 집으로 가지고 왔던 금은아미타여래좌상이 상위에 놓여 있던 것이다.
“아니! 이 불상이 어떻게 여기에?”
말을 하면서 김동현은 옆에 있는 김정웅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마치 개선장군처럼 환한 기색을 띠며 차갑게 외면했다. “
이 불상은 어떤 물건인가?”
자신이 없는 말투로 이병각이 물었다. 그러자 김동현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사장님, 좋은 거예요. 재간 있으면 사세요.”
“어떻게 알지? 훌쩍 보고.”
“이 물건 우리 집에 왔던 거여요. 돈이 없어서 정권장을 보여 주었더니 그가 250만 원 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못 팔겠다 하며 그냥 가져갔어요.”
“자네가 좋다니까 사지. 그래 얼마 받겠소?”
금속 유물에 대한 김동현의 감정을 믿었던 이병각은 결심을 굳히고는 김정웅을 쏘아보며 물었다.
“생각해서 주십시오.”
“그러면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250만 원 주지.”
그날의 거래는 매우 시원스레 끝났다. 김동현도 기뻤다. 왜냐하면 가지고 싶었던 물건이 일단 가깝게 아는 사람에게 들어갔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거짓 증언으로 불상을 죽이다
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났다. 하루는 형사들이 들이닥쳐 김동현을 연행해 갔다.
“경찰서까지 가 주여야겠어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으나, 지프차를 타고 가면서 형사의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듣고서는 이해가 되었다. 사건의 전모는 이러했다. 경주의 남산에 남산사(南山寺)라는 황폐화된 절이 있는데, 그 앞마당에는 3층 석탑이 두 개나 서 있다. 일확천금을 노리던 도굴꾼들이 현재 보물 제124호인 ‘남산 사지의 3층석탑’을 자키로 들어 올려 이 불상을 도굴했다는 소문이다. 그 일당은 이미 여러 번의 도굴을 했고, 고미술품을 대구에 사는 모 수집가에게 팔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도 처음 보는 금은여래좌상이 나오자, 생각을 바꾸어 서울로 팔러 온 것이다. 그중 한 명인 김준철이 김동현을 찾아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자, 또 다른 일당이 불상을 가지고 올라와 종로의 고옥당을 들렸다. 주인은 김정웅이었다.
“이거 좋은 겁니다. 국보 감입니다.”
“그런데 요즘 만든 것 아닙니까?”
노련한 장사꾼이 일침을 가했다.
“택도 없는 소리 마시오. 500만 원입니다. 한 푼도 에누리 없습니다.”
순간 김정웅의 입가에 조소 어린 비웃음이 돌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여보시오, 떳떳하지도 못한 물건이 어떻게 제 구실을 한단 말이요? 누구 신세 망칠 일 있어요?”
도굴품임을 확인한 김정웅은 대뜸 반발 비슷하게 나왔다. 그 자는 아차 싶어 오금이 절였다.
“그럼, 어떡하면…?”
“50만 원을 주겠어. 이것도 대단히 큰돈이야. 만약 다른데 가면 10만 원도 어림없을 거야.”
그 자는 돈을 받고서는 꽁지가 빠지도록 도망쳤다. 그런데 정작 50만 원을 받아 경주에 왔을 때는 상황이 달라졌다.
“뭐야! 50만 원을 받아 왔다고?”
“그래. 그것도 많이 받은 거야.”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김준철은 250만 원 준다는 것도 안 팔고 왔는데 고작 50만 원 받아 오고 큰소리가.”
한 놈이 그 자의 멱살을 잡고,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사건의 전말
싸움이 커지자 경찰이 들이닥쳐 일당은 모두 감옥에 갇혔다. 사건을 담당한 형사는 곧 이 싸움이 단순한 감정싸움이 아니라 도굴과 연관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경주 경찰서 특수 형사대. 형사 한 명이 책상을 주먹으로 꽝 치며 소리를 질렀다. 변명이 통하지 않는 군사 혁명정부의 경찰이다.
“불상입니다.”
“뭐라고? 불상? 지금 어디에 있니?”
"…” “어디에 있냐고? 이 새끼야!”
형사의 주먹이 가차 없이 가슴팍을 파고들었고, 비명 소리가 난자했다. 매에는 장사가 없다고 사건 전말이 모두 밝혀졌다. 그들은 문화재보호법 위반이란 죄목으로 바뀌어 구속 수감되었다. 이 사건은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당시 기사는 도굴의 심각성을 알리고, 불상 하나를 거금 250만 원에 주고 산 사람까지도 싸잡아 매도하였다. 특히 어려운 국내 사정에 비추어 보아 너무나 엄청난 돈이었다. 급기야는 검찰까지 개입하여 사건과 연루된 모든 사람들을 구속시켰다. 사건은 곧 서울지방검찰청으로 송치되고, 이병각이 소장하던 금은여래좌상은 장물로 압수되어 국립중앙박물관 지하수장고에 보관되었다. 특히 250만 원을 받은 김정웅은 50만 원은 본전으로 젖히고 이 일과 관계된 주석도를 비롯한 여러 명과 200만 원을 나누어 썼다. 이병각과 김정웅도 장물 취득 혐의로 구속되었다.
재판과 위증
당시 재개의 거물이던 이병각은 즉시 오병학 변호사를 선임하였다. 사건의 맥을 잡은 오병학은 그 즉시 김동현을 찾아가 위증을 부탁했다. 김동현이 그 불상을 가짜라고만 진술하면 모든 사람들이 풀려난다는 요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가짜일 경우 문화재가 아닌 공예품이기 때문이다.
“김 선생님, 해결의 열쇠는 김 선생님에게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오 변호사는 집요하게 위증을 설득했다. 김동현은 먼저 양심을 속이고 또 위증을 하면 그 불상은 영원히 가짜가 되어 더 이상 제 구실을 하지 못할 것이 염려되었다. 그러나 가깝게 지내던 이병각의 감옥 생활도 보기가 어려웠다. 갈림길에 선 김동현의 인간적인 고뇌는 너무나 지독했다.
“김 선생님, 그 불상의 진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야 진짜죠. 내가 여러 모로 살펴보았는데, 틀림없는 진짭니다. 진짜는 진짜지요. “
“예, 진짜는 진짜일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까 말로 가짜라고 해도 진짜는 진짜죠. 그러니까 가짜라고 말씀해 달라는 것입니다.”
김동현은 오병학의 기막힌 머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드디어 재판이 열렸다. 도굴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오랏줄에 묶이어 법정 맨 앞 좌석에 앉았다. 그 사이사이에는 교도관이 끼어 앉았다. 그날의 재판은 세인의 관심이 컸던 탓으로 각종 신문과 방송국에서 나온 기자들도 뒤쪽에 진을 치고 있었다. 재판이 진행되고, 드디어 김동현이 증인으로 채택되었다. 문상익 검사의 날카로운 심리가 계속되고, 오병학 변호사의 변론도 불을 튀겼다.
“증인은 이 불상을 이병각 집에서도 보았고, 좋으니까 사라고 했지요?”
“예.”
“그 말은 진짜 신라의 불상으로 인정한 것이 닙니까?”
문상익 검사의 심리가 있고, 오병학 변호사의 변론이 시작되었다. 김동현은 마음이 지쳐 있었다.
“증인, 증인은 이 불상이 신라 시대의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오병학이 김동현을 쳐다보며 눈을 찡긋했다. 김동현도 그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광배의 화염문 조각이 너무 화려하고 세밀합니다.”
“그 말씀은 신라 시대의 작품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풀 조각이 우리나라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증인,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이 불상이 우리 나라 신라의 불상이 아닙니까?”
“이 불상은 송(宋) 나라나 원(元) 나라에서 고려의 큰절에 봉납한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판결과 후속 조치
증인 신문이 끝났다. 김동현의 말 한마디가 파문을 일으키며 이 불상은 완전히 가짜로 판결 났다. 하지만 이병각은 장물 취득 혐의가 적용되어 금고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래저래 재판을 받느라고 5개월간은 실제로 복역했다. 가짜로 판별되자 신문마다 떠들썩거렸다. 당시 한국 일보에는 ‘10만 원짜리 가짜’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일본 전문가의 감정
불상이 가짜로 판명된 후, 일본의 불상 권위자인 마찌하라는 불상을 확인하며 '한국의 위조품'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한국 사람들이 가짜라고 하는 진짜 불상이라는 의미였다. 이병각은 불상을 찾아온 후 팔지 않고 소장하겠다고 결정했다.
불상의 최후
이병각이 사망한 후, 불상은 그의 외동딸에게 넘어갔다. 주석도는 김동현에게 불상을 넘기기 위해 중재했고, 결국 김동현은 불상을 1,500만 원에 구입했다. 이후 김동현은 불상을 호암미술관에 기증했으나, 불상은 여전히 가짜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불상의 현재
1997년 호암미술관 소장 금속유물특별전에서 불상은 '18세기~19세기의 작품'으로 전시되었다. 김동현은 불상의 진가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현재 김동현은 90세를 넘겼으며, 불상의 진가를 평가해 줄 용기 있는 학자의 등장을 기대하고 있다.
마무리
금은아미타여래좌상은 그 신비로운 역사와 정교한 제작 기법으로 인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비록 현재는 가짜로 판명된 상태이지만, 여전히 그 가치와 의미를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김동현의 간절한 바람처럼, 언젠가 이 불상의 진가를 제대로 평가받을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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