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이어집니다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진정시킨 뒤, 권명근은 백자항아리를 어디에다 팔까 를 생각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 중의 보물이며 금방이라도 국보로 지정될 것만 같았다. 팔아 없앴던 기와집은 문제가 아니었다. 금방 수십만 원이 생겨 고래등 같은 집을 짓고 가게도 넓힐 수 있었다. 한 점 가지고 승부를 거는 것이 이 세계이다. 사람에게는 일생을 두고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했는 데, 자기에게는 한꺼번에 겹쳐서 온 것만 같았다. "아, 누구에게 팔지?" 가게 문은 아예 걸어 잠근 채, 며칠을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나 ' 장고 끝에 악수'라고 그는 일생을 두고 가장 가혹한 곳을 찾아내고 말았다. 미처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때 생각난 사람이 ' 메다마'였다. ' 눈깔'이란 별명을 가진 한영호(輸水鎬)는 창랑(滄浪) 장택상(張澤相, 1893 ~ 1969)의 심복 거간으로 그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었다.
장택상, 당시는 아직 대한민국이 수립(1948년)되기 전으로 그는 수도경찰청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지위에 있었다. 일제 때 영국 유학에서 돌아온 그는 서화, 골동을 즐겨 수집하더니 세상이 바뀌자 정치가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래, 큰 물건은 거물에게 팔아야 제격이지." 권명근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기회를 잘 이용하면 당당한 백도 생기고 또 골동계의 우두머리까지 노려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자 이 천하의 백자항아리는 한영호를 통해 곧 삼륜차에 실려 경찰청장실로 들어갔다. 뒤따라간 권명근은 큼직한 책상 너머로 거만스럽게 앉아 있는 장택상에게 허리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청장님?"
"어서 오시오. 좋은 물건을 입수했네요."
항아리를 바라보는 장택상의 눈동자는 황홀감에 싸여 완전히 초점을 잃고 있었다. 자기가 소장하던 백자들과도 견주어 보았다. 그러나 도대체 비교가 되지 않는 회대의 거물이었다.
"그래, 얼마면?"
"한 이십만 원은 ······."
"허, 알겠소. 집에 가서 기다리시오. 곧 돈을 보내리다."
대답은 더없이 시원했고, 오히려 깊은 감사의 빛까지 역력했다. 권명근은 휘파람을 불었다. 다가올 장밋빛 인생을 생각하면 마치 구름 위를 걸어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언제 돈이 올까 하며 애간장을 태우는데, 갑자기 형사들이 들이닥쳤다. 권명근은 이유도 모른 채 종로경찰서로 끌려갔다.
"이 새끼야, 빨리 불지 못해?"
형사의 거친 손이 권명근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무슨 일이오? 나는 정당하게 돈을 주고 샀단 말이오."
억장이 무너지듯 분하고 억울해 악을 썼다. 그때 옆에는 항아리를 판 두 청년이 심하게 구타를 당한 채 엎드려 있었다. 권명근은 기겁을 했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물건은 저 청년의 집에...... 윽!"
발길질에 뺨에서 불이나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억울해서 비명을 지르다가 자기도 모르게 기절했다. 희미하게 눈을 뜨니, 도대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감방 안은 흡사 먼 시간대로 유배당한 듯 머리까지 윙하니 올려왔다. 죽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억울해서 죽을 수는 없었다. 그 휘황찬란한 꿈을 두고 어떻게 죽을 수가 있는가? 아니다. 뭔가 오해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기를 쓰고 생각에 잠겼던 그는 마침내 소리를 내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너무나 경솔했다. 어찌 떳떳치 못한 물건을 경찰청장의 코앞에 밀어 넣은 뒤 '날 잡아 잡수시오'라고 했던가. 다른 골동상도 얼마든지 많은데 일을 당하고 보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동안 물건을 맡았던 김 씨도 수차례 경찰서로 불려 다니며 조사를 받았다.
"김 씨, 물건을 도둑맞아서 얼마나 마음이 아픕니까?"
"예? 무슨 말씀을? 저는 시미즈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서 ······. "
"무슨 말이오? 당신의 물건을 놈들 이 훔쳐다가 술 처먹었지 않아요?"
"그게, 그놈은 바로 제 자식과 사위 놈입니다."
"예! 뭐라고요? 그러면 김 씨도 한패로 간주되어 현행법상 도적으로 ······. "
"아이고, 선생님. 살려주세요."
미리 짜놓은 각본이었다. 김 씨를 백자항아리의 주인으로 간주하고, 그 아들이 저지른 거래는 원인 무효화시키려는 술책을 꾸몄다. 김 씨는 무슨 소리 인지 알 수도 없어 살려 달라고만 애원했다.
"제발, 선생님. 어떻게 가족 모두가 징역을 갈 수 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럼, 내가 청장님을 만나 보게 해 줄 테니 직접 만나서 사정해 보시오."
"예, 예, 알겠습니다. 은혜는 정말 잊지 않겠습니다."
널찍한 집무실, 벌벌 떠는 김 씨를 바라보던 장택상이 말했다.
"그럼 진짜 주인은 당신이니까, 당신이 나에게 백자항아리를 파는 것으로 하면 어때요."
"예, 예,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김 씨는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청장실을 물러나왔다. 그러자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불러서 급히 다가갔다. 지장을 찍으라는 것이다. 물건을 양도한다는 증서였다. 지장을 찍자, 흰 봉투가 김 씨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집에 돌아온 김 씨는 깜짝 놀랐다. 아들과 사위 놈이 벌써 돌아와 잔뜩 겁에 질려 웅크리고 있었다. 방문을 잠그고 봉투를 연 김 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금 5만 원이 들어 있었다. 권명근에게서 받은 돈이 2만 5천 원, 김 씨가 받은 돈이 5만 원. 도합 7만 5천 원을 횡재한 것이다. 또 모든 거래는 합법적이라 전혀 잘못이 없었다. 그러나 억울한 것은 권명근이었다.
"그럼, 이 종이에 항아리를 포기한다는 각서를 써."
"못해요. 나는 못해요."
권명근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여 고개를 흔들어댔다. 하지만 이십여 일을 버턴 그는 결국 포기각서를 써주고 풀려났다.
그 후로 권명근은 시름시름 앓더니, 나온 지 석 달도 채 못 되어 목매달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권명근의 죽음을 부른 비운의 백자항아리는 합법적인 거래로 장택상의 소장품이 되었다. 세상은 그의 절대적 권력에 위압당해 누구 하나 이야기를 꺼 내지 못했다. 그 후 위세를 떨치던 장택상도 마치 권명근의 원혼(寃魂)에 얽히기라도 하듯 국무총리로 앉아 있다가 몇 달이 못 가서 후루이치 사건으로 물러났다. 그 뒤 6 · 25 전쟁 후 부산에서 환도한 그는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해 평생 동지였던 이승만과 겨루었다. 그러나 낙선하고 말았다. 선거에서 패배하자, 사정이 매우 어려워졌다. 예나 지금이나 선거를 치르려면 돈을 쏟아부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1965년 장택상은 이 청자항아리를 팔려고 마음먹었다. 그러자 내로라하는 골동 수집가가 장사동에 있던 그의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행운은 장규서에게 돌아갔다. 장규서(蔣奎格), 그는 이화여대 김활란 총장을 도와 이대박물관의 전신인 필승각(必務關)을 설립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사람이다. 처음부터 김활란과 인연을 맺어 고미술품을 수집하는 책임자로 활약했다.
"창랑 선생, 이 명품은 개인이 소장하기는 어려운 물건입니다. 이번 이화 여대에서 박물관을 설립하면서 전시할 작품을 찾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학생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장규서가 이화여대에 백자항아리를 넘겨 달라고 애원했다.
"그래요! 하긴 나도 형편이 좋지 못합니다."
장택상의 얼굴에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가격은 김 박사와 협의하여 서운하게 대하지는 않겠습니다. 창랑 선생의 따님도 이화여대 학생이 될지 압니까?"
허물어지는 장택상의 의지를 잡아채고 장규서가 노련한 일침을 가했다. 그대로 적중했다. 결국 백자항아리는 박물관 기증을 전제로 필승각으로 넘어갔다. 일금 1천5 백만환 , 이 거금은 당시 고미술품 한 정의 값으로 유래가 없는 큰돈으로 일류 수장가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액수였다. 이화이대 신입생 1학기 등록금이 1만 5천 원대였으니 학생 1천 명의 등록금이 들어간 셈이다. 현재 이 백자항아리의 추정 가격은 150억 원 이상을 보고 있다. 시미즈의 애환과 권명근의 한이 배인 이 천하의 명품은 그렇게 하여 이화여대박물관으로 들어갔고,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07호로 지정되어 이 민족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 후 장택상은 말년을 조용히 보냈는데, 젊었을 때에 누렸던 권력과 영화는 송두리째 날아가고 아끼던 고미술품까지 그리 많지 않았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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