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철사포도문호(白罐 银砂葡萄文查, 국보 제107 호), 이 백자항아리는 높이가 53.3 cm로 당당한 크기며, 17세기 후반에 궁중의 요(窯)에서 만들어진 걸작 중의 걸작이다. 알맞게 솟은 입에 어깨는 둥글고 풍요로우며 허리 아래로는 힘차면서도 대담하게 좁아져 아랫도리의 맵시가 한층 돋보인다. 또 철사(概秒) 포도 덩굴은 멋지게 뻗었고, 넓적한 포도 잎 사이로는 붉 은 포도가 주령주령 열렸다. 포도 덩굴이 뻗어 나간 자취부터 순리에 따랐고, 그림이 차지한 공간도 더없이 적절하다. 마치 순백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듯하다. 그림을 그린 필체 또한 능숙한데, 알맞은 볼 온도에 초벌구이해서 선비의 고절한 문기 (文氣)가 절절 흐른다.
시미즈 고지(清水幸大), 그는 일제 때에 조선 철도(주)의 전무로 근무했던 일본인으로 한국의 도자기를 무척이나 좋아해 상당수의 백자와 청자를 애장 한 인물이다. 비록 수량은 적었지만 하나같이 격이 높은 것들이었다. 그런 그에게 천하의 지인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백자가 있었으니, 바로 백자철사포도문호였다. 그는 1916년부터 이 항아리를 은밀하게 소장하였고, 만약 전시회나 경매장에 출품했다면 틀림없이 당시 최고의 명예인 보물 지정은 너끈히 받았을 물건이다. 그러나 혹여 부정이라도 탈까 봐 혼자서만 감상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러나 1945년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일본이 전쟁에 패하자 그는 졸지에 패전국의 포로가 되고, 남한에는 곧바로 미군정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그 역시 모든 재산을 고스란히 남겨 둔 채 빈 몸으로 일본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군정령에 의해 보따리의 크기를 제 한받자 (륙색 한 개), 이 항아리 역시 일본으로 가져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자 시미즈는 사지(死地)에 내버려 두고 가는 사람처럼 항아리를 만지고 또 만지며 겹겹이 포장했다. 나중에는 둥그런 종이 뭉탱이처럼 보있다. 어쩌다가 백자를 내버려 두고 가는 슬픔이 그동안 누렸던 영화만큼이나 혹독하게 밀려와 목까지 잠겼다.
시미즈는 부인을 바라보며 애원조로 말했다.
"생각한 것이 있소. 우리 물건을 다 주고 이것만은 잘 간수해 달라고 합시다. 세상이 변해 다시 올 수 있으면 그때 ·····."
부인 역시 굵은 눈물을 거침없이 떨어뜨리며 앞으로 살길을 걱정했다.
"김 상말인가요?"
"그래요. 그 사람은 오랫동안 우리 집안일을 돌봐 주고 또 순진하니 부탁을 들어줄 것이오."
다음 날, 종이 뭉텅이가 된 백자항아리를 가운데 두고 시미즈는 김 씨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김 상, 정말 부탁해요. 이 물건만큼은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꼭 소중히 보관해 주시오. 예?"
그토록 거만하고 당당해 보이던 주인이 눈물까지 뿌리는 통에 김 씨는 당 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했다. 시미즈는 그렇게 일본으로 돌아갔고, 또다시 1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해방과 더불어 일본인이 두고 간 일급의 명품들이 심심찮게 시중에 나돌아 골동계는 화창한 봄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권명근(權明根)의 골동품 가게 만은 늘 파리만 날아다녔다. 다른 사람이 한 건의 거래로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들리면 괜스레 울화통이 터졌다. 한 번도 번듯한 물건을 잡아 보지 못한 그였다. 자기에게만 운이 비껴간다고 생각했다. 그날도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다 지쳐 일찍이 가게 문을 닫고 있었다. 그때 난데없이 두 젊은이가 가게 문을 열고 성큼 들어섰다.
"저, 이만큼 큰 항아리도 사요?"
두 청년이 두 팔을 활짝 펴서 큰 원을 그려 보였다. 권명근은 어떤 직감에 금세 소름이 끼치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래, 대어(大魚)다.
"사지요. 물건은 어디 있어요?"
"기다리세요. 우리가 다시 가서 가져올게요."
이제 갓 스무 살이 되었을까. 그 청년은 시미즈가 물건을 맡긴 김 씨의 아 들이고, 다른 청년은 그의 매부였다. 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 둥한 그놈은 방탕한 기질에 도박까지 즐겼다. 자연히 돈이 떨어지자 아버지를 졸라댔다. 김 씨 또한 그런 돈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때 눈에 띈 것이 다락에 수북이 쌓인 도자기였다. 몰래 한두 점 파니, 신기하게도 큰돈이 생겼다. 돈이 생기자 그놈은 이제 기생 외도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안 김 씨는 시미즈가 신신당부한 항아리만큼은 절대로 안 된다며 못을 박았다. 시미즈가 남긴 도자기는 일 년이 채 못 가 그놈들이 술과 계집을 사는 데 모두 탕진되고, 이제는 절대로 손대지 말라던 백자항아리만 남았다. 얼마 후 리어카가 가게 앞으로 들이닥쳤다. 권명근은 숨이 막혔다. 진짜다! 상자를 가게 안으로 옮긴 뒤 끈을 풀고 항아리를 꺼냈다. 커다란 종이 뭉치였다. 백지가 겹겹이 발라 있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선의 윤곽만 보고도 권명근은 숨이 막히고 다리가 덜덜 떨렸다.
"이거 어디서 난 것이오?"
혹시 장물일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겁이 덜컥 났다. 젊은이의 차림새로 보 아 아직 거물급 골동품을 다루기에는 너무 어렸다.
"아저씨, 걱정 말아요. 이거 우리 집에 있던 거예요."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대답이다. 말에 자신이 차 있자, 권명근은 조금 안심 이 되었다. 혹시 도자기에 흠이라도 날까 봐 정 성을 다해 한지를 한 을 한 을 뜯어냈다.
"아저씨, 이 물건은 왜놈이 우리 집에 놔두고 간 것이니 전혀 걱정하지 말 아요."
"왜놈이! 누구요?"
"왜 철도국에 근무했던 시미즈라는 작자지요."
아!
권명근은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몇 번인가 낯선 청년이 물건을 야금야금 물어다 판다는 소문이 골동계에 돌았다. 모두 격이 높은 일급품이어서 골동상들이 군침을 흘린다는 것이다. 면도칼로 두껍게 바른 한지를 한 장 한 장 오려 내었다. 감이 잡히자 흥분으로 손까지 떨렸다. 마치 하늘에서 금덩이가 뱉어진 것처럼 보였다. 땀을 뻘뻘 흘려 가며 백지를 벗겨 낸 뒤에 마치 어린아이 목욕시키듯 정성껏 물로 닦아 냈다. 그러자 그 속에는 아직 얘기도 들어 보지 못한 천하의 명품이 마치 수줍은 색시 마냥 모습을 드러냈다.
"어때요? 대단하죠?"
아......!
꿈이 아닌가 싶어 살을 꼬집고 눈을 비벼 봐도 버젓이 생시였다. 의심할 여지도 없는 눈이 부시도록 하얀 진품이었다. 귀신에 홀린 듯이 권 씨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자, 두 놈은 즉시 대단한 물건으로 알아차리고 의기가 양양 했다. 그러자 권명근도 재빨리 장삿속으로 돌아와 냉정을 되찾았다.
"그래, 얼마에 팔겠소?"
"오만 원이오."
한 청년이 힘껏 불렀다. 당시 7 칸짜리 기와집이 대략 2만 원 정도 했다. 기와집 두 채가 약간 넘는 돈이었다. 그래도 이건 돈벼락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몇 십만 원에 내놓아도 누가 골라잡을지 모르는 물건이었다.
"무슨 소리요? 지금은 왜놈들이 내놓은 도자기들이 지천이오. 2만 원이면 많이 주는 것이오."
"무슨 소리를? 이보다 못한 것도 2 만 원을 넘게 받았소."
한 놈이 전에 관 도자기를 빗대어 대들었다.
"모르시는 말씀. 도자기는 모양이 회귀해야 비싸지. 이런 항아리는 많아요. 자 보세요."
두 청년은 찔끔했다. 가게 안을 둘러보니 비슷하게 생긴 항아리가 여럿 있었다. 권명근은 예리하게 두 청년을 농락했다.
"어떡하겠소? 정히 못 믿겠다면 다른 데로 가 보시고."
"아니오. 팔겠어요. 5 천 원만 더 줘요."
고민이 아닌 흥분을 진정시키려고 한참 뜸을 들인 권명근이 입을 열었다.
"좋아요!"
두 청년은 얼굴이 금세 환해지며 서로를 바라보며 히히덕거렸다. 마음은 벌써 기생집으로 달려가고 있던 모양이다.
"내일 다시 오시오. 거금이라 돈을 마련하려면 시간이 걸려요."
권명근은 그날 밤 부랴부랴 돈을 끌어 모아 다음 날 6 천 원을 주고, 살던 기와집까지 팔아 잔금을 치렀다. 자기는 단칸 월세방으로 옮겨 앉았다. 하지만 마음은 하늘로 두둥실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사람의 운명은 하늘이 점지해 준다고 했던가?
정리하다 보니 글이 길어서 2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이것저것 관심 많은사람입니다? > 옛것이 좋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보따리상에게서 나온 맹호도 (65) | 2024.06.22 |
---|---|
백자철사포도문호ㆍ죽음을 부른 도자기 2 (122) | 2024.06.21 |
망우산 기슭에 버려진 죽음ㆍ망우리 공원 (173) | 2024.06.19 |
효창공원의 안중근 허묘 (139) | 2024.06.17 |
부산항일학생의거기념탑 (150) | 2024.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