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근대역사관은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내부는 3층이다. 내부공사를 통해 천장이 높았던 1층을 중층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1층 내부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것은 일제강점기의 금융기관이나 통치기구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양식이다. 현재 대구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되는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건물도 그렇다.
큰 성당에 들어가면 누구나 느끼듯이 높은 천장은 신을 섬기고 우러러보며, 반대로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자아낸다. 인간에게 신앙과 겸손을 가르치고자 하는 종교 건축물의 한 특징이다. 일반 건물에 이러한 시각적 장치를 들여오는 경우 복종을 강요하는 정치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특히 제국주의는 이러한 시각적 효과를 지니는 건물들을 세워 그들이 지배한 지역에서 근대 문명의 우월성과 제국의 위용을 보여줌으로써 식민 통치의 '정당성'을 강요하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위압적 효과를 부각하려고 한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문화와 전략을 답습했던 일제도 자신들이 침략한 지역에서 지배기구 건축물을 지을 때 화려하고 천장이 높은 양식을 활용했다. 특히 식민 통치를 위해 포섭해야 될 집단인 조선인 자산층이 자주 드나들어야 했던 금융기관은 예외 없이 이러한 건축양식을 활용했다. 물론 이러한 시각적 장치 때문에 식민지 금융기관의 본연적 수탈 기능이 상쇄되거나 조선인들이 그에 복종한 것은 아니었다. 나석주(羅錫疇)와 장진홍(張鎭弘)이 조선식산 은행과 조선은행에 폭탄을 투척한 것처럼 식민지 금융기관은 조선인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주요 대상이었다.
휴게 공간, 근대자료실, 영상실 등으로 구성된 1층을 떠나, 2층으로 올라가면 개항~일제시대를 주제별로 세 부분으로 나눠 구성된 부산의 근대사를 만나게 된다. 개항, 일본인의 이주와 전관거류지(어느 한 나라의 행정권, 경찰권 등이 단독으로 행사되는 지역을 말한다.)가 형성되고 확장하는 과정을 통한 부산의 식민 도시화, 일본인의 경제침탈에 대응한 조선 상인의 모습으로 구성된 '부산의 근대개항'이라는 전시실을 지나면 일제강점기 전시실에 들어선다. 먼저 '일제의 부산수탈'이라는 주제로 지배기구 형성과정, 일본인이 각 경제 부분을 독점하면서 성장하는 모습과 각 계층의 저항, 일제가 도발한 전쟁수행을 위한 인력과 물자 수탈의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조선인이 겪었던 고통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강제로 징병, 징용된 부산 주민의 모습을 사진과 인터뷰 영상으로 보여주는 부분은 화석화되거나 잊혀 가는 고통의 역사를 현재의 관람자들이 생생하게 인식하도록 해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일제시대 수탈에 반발한 조선인의 능독적인 대응이나 삶의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식민지 공업화와 지주제의 수탈을 설명하는 공간 한편에 부산 지역의 일본인 대지주 하자마 후사타로 농장의 소작쟁의, 부산 부두노동자의 총파업, 조선방직 노동자들의 파업 들이 단지 몇 줄로 정리되어 있을 뿐이다.
부산 주미의 저항을 가혹한 수탈에 의한 수동적인 반발로만 그려질 뿐 그들의 의식과 사상, 구체적 활동 내역에 관한 설명은 없다. 과연 소작료는 얼마나 고율이었고 농민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조선인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은 얼마나 열악했는지, 이들의 일상적 불만이 어떠한 의식과 계기에서 사회적 저항으로 조직화되고 지지를 받았는지 등은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부산의 유명한 독립운동가에 대해 '일제강점기 민족해방운동'이라는 작은 판에 연대순으로 활동만 간략히 정리해 놓았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조선인들은 부산의 주체라기보다 '대상화'되고 '객체화'된 존재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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