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라우치 문고 특별전: 약탈된 조선 문화재의 반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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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9월, 서울 중심가에 있는 덕수궁 석조전에서 '데라우치 문고 특별전'이 열렸습니다. 이 전시는 일제 강점기 초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조선과 중국에서 수집하여 일본으로 반출한 우리 문화재 중 일부가 경남대학교에 기증되어 다시 돌아온 것을 기념하는 특별 행사였습니다.

 

데라우치 문고 특별전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문화재 약탈

데라우치 마사다케는 1902년 조선 철도회의 의원으로 취임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조선의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조선 왕실로부터 받은 돈으로 김생(金生)과 최치원의 서신을 포함한 '명현간독(名賢簡牘)'을 일금 80원에 구입하는 등 다수의 귀중한 서적과 고문서를 수집했습니다. 이번 특별전에 나온 작품들은 역사적 인물의 서신, 중요한 서적, 고문서 등 총 97종 134점에 달했습니다.

일제의 조선 문화 말살 정책

데라우치는 '조선인은 일본의 법규에 복종하거나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말을 남긴 인물로,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합방시키는 데 주요 역할을 했습니다. 그가 저지른 가장 끔찍한 만행 중 하나는 조선의 민족혼을 말살하려 한 시도였습니다. 1910년 11월, 조선 총독부는 불온서적으로 분류된 서적들을 압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채호의 소설 〈성웅 이순신〉, 〈을지문덕〉 등을 포함한 다수의 책이 이에 포함되었습니다. 국치일인 1910년 8월 29일 이후, 총독부는 사전 준비를 치밀하게 진행했습니다.

조선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책들은 불온서적으로 분류되어 무조건 압수되었습니다. 서울 종로 일대의 서점뿐만 아니라 향교, 서원, 사찰, 양반가 등 서적이 있을 만한 모든 곳을 파헤쳤습니다. 일제가 유통을 금지한 서적은 총 51종, 20여만 권에 이르렀으며, 압수된 책들은 무차별적으로 불에 태워졌습니다. 이는 민족정신을 담은 책을 불살라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임진왜란과 문화재 약탈

임진왜란 때에도 일본군은 우리의 문화재를 약탈했습니다. 우키다 후데이에(浮田秀家)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수십 궤짝의 책을 전리품으로 바쳤습니다. 이 책들은 우리의 정신을 연구해 대륙 침략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책은 지금도 극히 귀중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데라우치의 문화재 반출과 그 후

데라우치는 조선에서 약탈한 3천여 점의 문화재를 일본으로 반출했습니다. 신라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의 귀중한 자료들이 포함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신라의 김생(金生), 고려의 유신(柳伸), 탄연(坦然), 최우(崔瑀) 등 이른바 '신품 4현(神品四賢)'의 글씨, 박문수(朴文秀) 집안의 호적 단자(戶籍單子), 임진왜란의 상황을 기록한 임진란(壬辰亂),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의 서신 등이 이에 포함되었습니다. 데라우치는 총리 대신으로 승진해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수집한 문화재를 고향인 규슈(九州) 야마구치현(山口縣)의 여자 대학에 기증했습니다. 해방 이후 한국 학자들의 노력으로 일부 문화재가 80년 만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와 우리의 정신적 유산

데라우치 마사다케 이전에도 우리의 정신적 유산을 일본으로 빼낸 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搏文)입니다. 1908년 경, 그는 고대의 한·일 관계를 은밀히 조사하고자 다량의 귀중본을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조선 합방의 야심을 품고 우리의 정신 유산을 모조리 일본으로 싣고 가려 했던 것입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규장각 서고에 있던 옛 책들을 목록화하고, 귀중본을 일본으로 옮겼습니다.

국제 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협약과 반환 노력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협약에는 인류 문화유산은 원래 소유국으로 반환돼야 한다는 정신이 명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서양 열강 국가들, 특히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거느렸던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등은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들이 유네스코에 가입해 협약 정신을 충실히 지킨다면, 그 나라의 국립박물관은 텅 비게 될지도 모릅니다.

힘이 있어야 조상의 유산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일제 강점기의 문화재 약탈과 그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재조명하고, 문화유산 반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