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백자양각철채난국초충문병: 전쟁을 넘어 간송 미술관에 이르기까지의 여정

한국 문화재의 보물, 청화백자양각철채난국초충문병

청화백자양각철채난국초충문병(靑華白磁陽刻鐵彩蘭菊草蟲文甁, 보물 제241호)은 높이 42.3센티미터의 큰 키에 균형 잡힌 아름다운 곡선과 백색 바탕에 들국화와 푸른 풀잎이 어우러진 백자 병입니다. 위쪽에는 나비들이 꽃을 찾아 날아드는 양각 문양이 있으며, 풀잎은 청화 안료로, 들국화는 진사와 철채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매우 드문 삼채(三彩) 기법을 사용한 백자로, 더욱 귀중한 가치를 지닙니다.

 

청화백자양각철채난국초충문병

일제 강점기와 모리 고이찌의 수집품

모리 고이찌(森悟 一)는 일제 강점기 때 제일은행의 은행장으로 재직하며, 고미술품 수장가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는 200여 점의 고미술품을 소장했으나, 이를 공개하거나 판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양과 질은 늘 미지의 영역에 있었습니다. 특히 조선 백자에 대한 감식안이 높아 거물급 소장품을 많이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모리 고이찌가 별다른 유언 없이 사망하자, 그의 유족들은 소장품 처리를 두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경성미술구락부 사장인 사사끼(佐佐木)는 유족을 설득해 고인의 소장품을 경매에 내놓기로 했습니다. 이는 전국의 골동계가 주목하는 사건이었으며, 특히 조선 백자 수집가들에게는 큰 관심사였습니다.

경매의 시작: 한국과 일본의 치열한 경쟁

경매 날짜가 다가오자, 출품작을 먼저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전형필은 실물을 보자마자 숨이 막히는 전율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유력한 수집가들과의 경쟁은 불가피했습니다. 일본에서 온 무라카미, 미요시 노인, 성환농장의 아까보시 등 막강한 경쟁자들이 경매에 참여할 예정이었습니다.

1936년 11월, 남산이 뚜렷이 보이는 맑은 날, 경성미술구락부회관에서 고미술품 경매가 열렸습니다. 이날 전형필과 심보는 많은 일본인 수집가들과 함께 경매에 참석했습니다. 경매는 초반부터 치열한 경쟁으로 진행되었으며, 값이 헐한 물건은 대부분 한국인에게, 비싼 물건은 일본인에게 낙찰되었습니다.

백자 병을 향한 마지막 경쟁

백자 병이 경매에 올라오자 경매장은 숨죽인 듯 조용해졌습니다. 가격은 순식간에 치솟았고, 3천 원, 5천 원, 7천 원을 넘어 8천 원에 이르렀습니다. 무라카미와 심보의 경쟁이 치열했으나, 결국 야마나까의 등장으로 경매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야마나까와 전형필의 대결은 일만 사천오백 원에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심보가 마지막 힘을 다해 일만 사천오백팔십 원을 불렀고, 야마나까는 더 이상 가격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경락봉이 떨어지며 백자 병은 전형필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6.25 전쟁과 문화재 수호의 위기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북괴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간송 미술관의 소장품을 포장해 북으로 가져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손재형과 최순우는 꾀를 내어 양주로 북괴군을 취하게 하여 시간을 끌었고, 결국 서울이 수복되자 소장품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청화백자양각철채난국초충문병은 무사히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보물 제241호의 현재 가치

1963년 1월 21일, 청화백자양각철채난국초충문병은 보물 제24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 이 백자 병은 간송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추산 가는 최소 100억 원에서 12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차와 소총의 싸움: 모리 고이찌의 수집품 경매

모리 고이찌의 소장품 경매는 한국과 일본의 수집가들 간의 치열한 경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경매 전, 전형필과 심보는 사진을 통해 경매 물품을 선정했으며, 전형필은 심보의 안목과 결정을 신뢰했습니다. 경매에 참가한 일본인 수집가들 중에서도 특히 무라카미는 매 순간마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전형필은 자신이 가진 재산을 가늠해 보았지만, 일본인 수집가들의 자본력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에 좌절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것을 다짐하며 경매에 임했습니다. 그의 결심과 노력은 결국 일만 사천오백팔십 원이라는 경매가로 청화백자양각철채난국초충문병을 손에 넣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청화백자양각철채난국초충문병의 역사적 가치

청화백자양각철채난국초충문병은 단순한 미술품을 넘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소중한 유산입니다. 이 백자 병은 조선 시대의 뛰어난 도자기 제작 기술과 예술적 감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한국의 문화재로서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전형필이 이 백자 병을 손에 넣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경매의 이야기는 한국 문화재 수호의 중요한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6.25 전쟁 중 북괴군의 손에 넘어갈 뻔한 위기 속에서도 이 백자 병을 지켜낸 일화는 문화재 보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줍니다.

간송 미술관의 역할과 중요성

간송 미술관은 한국의 문화재를 보호하고 전시하는 중요한 기관으로, 청화백자양각철채난국초충문병을 비롯한 다양한 소장품을 통해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간송 미술관은 전형필이 설립한 박물관으로, 그가 수집한 많은 문화재가 이곳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간송 미술관은 전형필의 헌신과 노력으로 한국의 귀중한 문화재를 보존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현재까지도 그 가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청화백자양각철채난국초충문병은 간송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 중 하나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결론

청화백자양각철채난국초충문병은 한국 문화재의 귀중한 보물로,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켜낸 민족의 자랑입니다. 이러한 문화재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되새기며, 그 가치를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간송 미술관에 보존된 이 백자 병은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