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아미타여래좌상: 신비로운 역사를 지닌 불상금은아미타여래좌상(金銀阿彌陀如來坐像)은 높이 15cm로, 불상과 대좌, 그리고 광배가 따로 주조되어 하나로 결합된 작품이다. 여래상은 순금으로, 대좌와 광배는 은에 금을 입혀 제작되었다. 이 불상은 통일 신라 말이나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연화 대좌 위에 석가여래가 중품상생인(中品上生印)을 짓고 앉아 있다. 뒤에는 불이 타오르는 형상의 광배가 붙어 있고, 대좌는 평면 6 각형의 3층 기단과 앙련(仰蓮)의 대로 이루어져 있다. 정교한 제작 기법대좌에 금을 입힌 방법은 때려 누르는 수법으로 제작되었으며, 이는 현대의 세금 기술로도 재현하기 어려운 고도의 기술이다. 잘못하면 은판이 찢어지거나 두께가 일정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투각으로 표현된 광배..
https://busane.tistory.com/entry/%EB%B0%B1%EC%A7%80%EC%B2%A0%EC%82%AC%ED%8F%AC%EB%8F%84%EB%AC%B8%ED%98%B8%E3%86%8D%EC%A3%BD%EC%9D%8C%EC%9D%84-%EB%B6%80%EB%A5%B8-%EB%8F%84%EC%9E%90%EA%B8%B0-1 백지철사포도문호ㆍ죽음을 부른 도자기 1백지철사포도문호(白罐 银砂葡萄文查, 국보 제107 호), 이 백자항아리는 높이가 53.3 cm로 당당한 크기며, 17세기 후반에 궁중의 요(窯)에서 만들어진 걸작 중의 걸작이다. 알맞게 솟은 입에 어깨는busane-sanda.com1편에서 이어집니다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진정시킨 뒤, 권명근은 백자항아리를 어디에다 팔까 를 생각..
백자철사포도문호(白罐 银砂葡萄文查, 국보 제107 호), 이 백자항아리는 높이가 53.3 cm로 당당한 크기며, 17세기 후반에 궁중의 요(窯)에서 만들어진 걸작 중의 걸작이다. 알맞게 솟은 입에 어깨는 둥글고 풍요로우며 허리 아래로는 힘차면서도 대담하게 좁아져 아랫도리의 맵시가 한층 돋보인다. 또 철사(概秒) 포도 덩굴은 멋지게 뻗었고, 넓적한 포도 잎 사이로는 붉 은 포도가 주령주령 열렸다. 포도 덩굴이 뻗어 나간 자취부터 순리에 따랐고, 그림이 차지한 공간도 더없이 적절하다. 마치 순백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듯하다. 그림을 그린 필체 또한 능숙한데, 알맞은 볼 온도에 초벌구이해서 선비의 고절한 문기 (文氣)가 절절 흐른다. 시미즈 고지(清水幸大), 그는 일제 때에 조선 철도(주)의 전무로 근무..
분청사기(粉靑沙器)란 그릇 표면을 백토로 화장한 다음에 유약을 발라 구운 청자라는 뜻이다. 일본인이 미시마(三導)라 부르던 것을 1940년대에 개성박물관장을 지낸 고유섭(高裕燮, 1904~1944)이 우리 식으로 이름을 붙였다. 분청사기는 형태나 문양에서 가장 한국적이며 또 현대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전체적인 느낌은 순박한 시골 청년을 닮았으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자유분방함에 익살까지 가득하다. 이것은 14세기 이후 사대부라 불리는 선비들이 고려사회를 이끌던 가치 관념을 버리고, 유학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나타났다. 즉 내세의 극락왕생보다는 사람의 본분을 지키면서도 현실 속에서 더 행복하고 풍족한 삶을 살자는 유학적 현세관이 표출된 것이다. 그 결과 그릇도 실생활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만들고, 또..
분청사기철화어문호(粉靑沙器鐵畵魚文壺, 보물 제787호), 이 항아리는 높이가 27cm나 되는 당당한 크기면서, 분청사기에 등장하는 모든 장식의장 즉 인화, 상감, 조화, 박지, 귀얄, 철화문 등이 호화롭게 망라된 국내 유일의 에로 유명하다. 주둥이는 비교적 넓고, 어깨에 이르기까지 차츰 벌어진 형태는 아래로 내려오면서 서서히 좁아졌고, 동체 하부는 낮고 작은 굽이 받치고 있다. 한눈에 아담하면서 귀여운 모습이나, 몸체에 비해 굽이 다소 작아 보여 약간 불안정해 보이는 것이 흠이다. 항아리의 중앙에는 두 마리의 물고기와 연꽃이 사실적으로 그려졌는데, 특히 물고기는 백토를 감입한 후 박지 하고, 지느러미는 철채, 형태 선은 백상감, 비늘은 인화기법으로 묘사해 표현이 매우 자유스럽고 대범하다. 또 어깨와..
금동미륵보살반가상(金銅彌勒普薩半跏像 93.5cm, 국보 제 83호), 이 불상은 돈자형(墩子形) 의자 위에 미륵보살이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앉아 있는 형태로 삼국시대 말엽(7세기경)의 대표적 미술작품이다. 이 불상을 보고 어느 독일의 박물관 관계자는 '십만 금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진품이다.' 라고 극찬을 했다. 오른손 끝을 뺨에 살며시 대어 명상에 잠긴 보살은 왼발은 내리고 오른발은 왼쪽 모릎에 얹은 반가상의 모습이다. 또 얼굴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띤 명랑한 표정이고, 천의를 목뒤로 돌려 어깨를 감싼 형태는 부피감과 함께 탄력적이면서 부드러운 율동이 느껴진다. 소박한 삼산보관, 벗은 상체, 간결한 목걸이에서는 단순함이, 가늘고 긴 눈, 오뚝한 코, 미소를 머금은 입에서는 자비로움이 서로 절묘한 조화..